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가 폭발했던 데뷔년도는 1992년이다.

전영록을 비롯해 당시 특종TV연예에서 가요계 선배급의 심사위원들이 역대 최저점인 7.8점을 준 것은 다름 아니라 생소한 음악에 대해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풀이 되는데, 사실 그들 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는 대개 "대체 이게 음악 맞아"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다라고 생각해 보면 조금 억울한 면도 있을 것이다. (이후 이 채점하는 영상이 두고두고 반복해서 방영되었으니 더욱 더)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2년에만 서울가요대상, 대한민국 대상 골든 디스크상, MBC10가요제 인기가요상과 신인기요상을 비롯해 다수의 상을 휩쓸었고, 4집 컴백홈까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상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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횽아~~ 리마스터링 앨범 왔..
횽아~~ 리마스터링 앨범 왔.. by 루미넌스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기 전

 

1984년 강변가요제에서 이선희가 대상을 수상하던 시기는 본격적인 발라드 시대을 여는 계기로 작용했다. 왜 굳이 이선희를 이야기 하는가 80년대 중후반 최고의 가수는 그녀였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 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를 통해 신해철(무한궤도), 주병선, 유열, 높은음자리, 박미경, 유미리, 티삼스, 이상은, 이상우 등 많은 인기가수를 집중 배출했다.

 

대개 발라드가 많았고 젊고 발랄한 스타일과 차분하고 감성적인 스타일이 두루 섞여 있었다. 이 시기는 그러니까 그전 부터 존재해 왔던 젊은이들의 음악인 포크송과 그 영향을 받은 세대가 부르는 밴드(당시 그룹사운드)음악, 그리고 발라드의 전성시대를 여는 시기였으며 그러한 음악 트랜드가 전통가요와 끊임 없이 부딪히는 결과를 만들어 내고 말았다.

 

가장 좋은 케이스가 바로 이선희다. 오늘날 김건모와 신승훈 등이 적수를 논하기 어려운 정도의 엄청난 음반판매량을 기록했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사실 그 이전 이선희는 센세이션을 넘어 단지 10대와 20대 뿐 아니라 비교적 넓은 연령대에 두루 사랑 받는 메가히트를 치고 있었다. 지난 일이니 당시 인기스타들을 나란히 놓고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이선희와 비견되는 큰 인기를 끌었던 이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몇해 동안 대상을 수상하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하나의 곡으로만 놓고 보면 약간 모자란 감이 있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높고 이성희 보다 더욱 넓은 연령대에 지지 받는 트로트 가수들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당시까지 기존가요계에서 바라볼 때는 트로트 주류고, 발라드는 새로이 부는 바람에 불과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선희가 대상을 수상하지 못한 여러해동안 더 많은 인기를 끈 곡이 없었다라는 점을 감안하면 약간 억울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대상수상곡들이 인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고 상대적이라는 말)

 

이런 현상이 역전된것은 이문세와 변진섭이 큰 인기를 끌고 신승훈이 데뷔하면서 부터였다. 비슷한 시기 일부 댄스음악이 인기를 끌었지만 서태지가 등장하면서 판도는 크게 달라졌다.

 

서태지와 부딛혔던 사회현상들

 

가요계 이야기는 다른 사회 문화적 현상들과도 맞물리는데, 서태지의 노래 중 '시대유감'은 멜로디의 일부가 선정적이라는 지적 때문에 가사가 삭제된채로 발매되었고, 이후 사전심의제도가 폐지되면서 가사가 수록된 곡으로 재발매 되었다.

 

오늘날 유신독재 시대가 그립다고 말하는 부류들은 이런 사회적 억압에 영향을 받지 않았거나 아예 무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지금 젊은이들은 많은 비합리적인 비 상식적인 일들이 너무 많다고 하소연하지만 서태지가 등장했던 시기는 지금과는 그 양상이 크게 달랐다. 통금이 존재하고 학생들은 까까머리를 해야 했으며 온통 규제와 억압이 있던 시대를 지나 조금씩 하나둘 풀려 나가고 있었고, 가요계의 서태지는 사전심의제도에 정면으로 맞섰다.

 

 응답하라1994는 이런 시대적 배경을 갖고 있다. 대학문화가 꽃피우고 다시 그 영향을 받은 후배들이 그런 문화를 이어가다 사회문화적인 변화가 갑자기 불길처럼 번지자 마침내 더욱 크게 꽃피우던 그런 시기였다. 드라마에서도 등장하는 농두 붐이 일었고, 삐삐가 휴대폰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 통신혁명의 전초전 성격으로 등장했으며, 천리안과 하이텔이 PC통신 시대를 열었다.

 

이런 변화는 가요계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드디어 전통가요가 신승훈으로 대변되는 발라드와 서태지로 대변되는 새로운 음악에 밀려 주류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또한 발라드 역시 점차 댄스음악에 밀려 확장일로 였던 기세가 주춤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이선희가 인기 있던 시기가 트로트의 마지막 전성시대였던 셈이다. 80년대 중부한 억지로 붙잡으려는 몸부림으로 이선희에게 마땅한 대우를 하지 않고 대상을 수여하지 않았다면 서태지가 등장한 1992년에는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을 만큼 발라드와 댄스음악,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크게 일어나 가요계의 주류가 되어 있었다. 89년 변진섭의 '희망사항'이 전국민적인 인기를 끌었고, 90년대에는 015B의 '신인류의 사랑'이 인기를 끌었으며 1996년에는 H.O.T가 데뷔해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변화는 갈수록 거세졌고, 저항하던 많은 것들이 무너졌다.

 

한국에 다시 이런 큰 변화의 시기가 찾아올지 알 수 없다. 세상의 변화는 언제 어떻게 찾아 올지 누구도 단정지어 말할 수 없다지만 한동안은 인터넷과 휴대폰 그리고 많은 변화가 한꺼번에 찾아온 90년대의 그런 커더란 변화가 앞으로 한동안은 찾아오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구글 글래스가 더 발전을 거듭해서 완전히 컴퓨팅 환경을 바꾸어 놓게 되는 날이 온다 해도 그것은 변화가 아니라 진화의 연장이라고 보는게 맞을 테니까.